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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한국인의 국가관(1948년 전후)(이대희)

한국인의 국가에 대한 관점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왔다. 국가나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이지만 가족처럼 우리의 삶에 가까이 나라 국()이 존재해왔다. 전쟁 기간, 국가 멸망, 독립 운동 기간에는 특별히 국가에 대한 국민 의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20세기 한국은 조선 멸망, 일제 노예화, 해방과 건국 과정을 통해 변화무쌍한 국가 역사를 지녔었다. 특히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건국, 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인의 국가관이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강렬해진 역사를 보여주었다. 당시대 한국인의 국가관에 대해 국가와 국민 형성의 역사적, 이념적 실상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1941127, 일본제국군이 그동안 전쟁 무관여 원칙(無關與原則)을 준수하고 있던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불시에 습격했다. 같은 날 일본군은 괌, 웨이크 섬, 영국 식민지인 홍콩과 필리핀, 타이, 말라야를 공격하여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주요 섬 장악에 나섰다. 세계 일등국을 향한 제국주의 일본의 대규모 전쟁 시도였다. 이 일본군 속에는 조선 반도의 젊은이들이 용맹스럽게 일본 국가를 위해 충성 맹세를 하고, 목숨을 걸고있었다. 일본군 속에는 충성스런 조선족(朝鮮族), 유구족(琉球族), 대만족(臺灣族)이 함께 하고 있었다. 유구는 1879년 일본에, 대만은 1895년에, 조선은 1905(외교권 상실)에 일본에 합병되었다. 1941년 당시 조선은 온전히 일본의 일부였다. 19193.1운동은 조선의 독립국임을 만 천하에 공개한 것이지만,당시 이미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이 바닥나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후 반도에 살고 있던 절대 다수 조선족은 영세 소작농, 임금 노동자 신세로 전락하였고, 소수 지식인 집단은 일제에 적극 협조하면서 인도나 필리핀과 같은 자치권이라도 얻기 위해 고심했다. 극소수 망명자들 중심으로 해외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했다.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조선인에게 국가는 일본이었고 충성 대상도 일본 천황과 제국이었다. 외교권 상실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는 국제 사회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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